파도소리마저 잠잠한 바다에는 적막만이 감돌 뿐이었다.
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.
잠을 자고 있었을까.
나는 몇 번이나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
눈을 감고있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그 어떤 신성함이 내 입을 막고 있었다.
나는 하려던 말을 삼킬 때마다 맥주를 마셨다.
알약을 삼키듯이 한 모금 한 모금 조심스레..
문득 내 어깨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.
그녀는 울고 있었다.
너무 나약하고 어렸던 나는 점점 젖어드는 어깨를 외면한 채 바다를 바라 볼 뿐이었다.
그 날이 처음부터 적막함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.
그 날 오전, 우리는 우리만의 만우절 퍼레이드를 했다.
‘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만한 분장을 하고 10분후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’
그녀는 집 앞 놀이 공원에서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.
10분 후 나는 입에 드라큘라 이빨을 끼고, 검은색 보자기를 망토처럼 두른 상태였고,
그녀는 레이스가 하늘하늘한 분홍색 드레스에 머리에는 고양이 귀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.
우리는 마주보며 웃었다.
‘오늘 하루는 온 종일 거짓말만 하는거야.’
- 좋아
그녀는 얼굴을 찌푸리고 혀를 내밀며 말했다
‘난 니가 싫어!’
나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.
- 넌 너무 못 생겼어
‘넌 너무 못 됐어’
- 너랑 있는 시간은 지옥같아
‘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’
- 나도 널 사랑하지 않아.
우리는 한참을 주고받은 뒤 또다시 마주보며 웃었다.
‘나 갑자기 바다가 싫어졌어. 바다보러 가는 것 따위는 싫어’
- 난 널 위해 여행 가자는 말 따위는 하지 않을거야.
‘나도 널 위해 도시락 따위는 준비하지 않을거라구’
- 절대 여행 가지말자.
우리는 무작정 기차를 타고 떠났다.
바다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이었다.
그녀가 바구니에 담아 온 도시락을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꺼내 나눠 먹었다.
‘바다는 정말 조그맣구나..‘
우리는 보온병에 담아 온 코코아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.
우리의 대화는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다.
한참동안의 적막.
이윽고 그녀는 혼잣말처럼 속삭이기 시작했다.
‘오늘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겠지.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. 미안해.’
난 그녀가 우리의 놀이를 계속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.
-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볼 수 없을거야.
바다는 회오리 쳐 우리의 시간을 삼켜버리고, 밤은 얼음장처럼 얼어 붙어갔다.
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시간은 어느새 자정이 지나있었다.
